내가 자라면서 처세술보다 먼저 배운 것은 엄정한 수학의 논리와 과학적 방법론이다.
때문에 나는(그리고 아마 고등학교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삶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공리적이다'라고 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적용하곤 한다.
최종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을 나열하고,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도출한 기준에 따라 수단을 하나씩 소거하며 마지막에 남은 것을 취한다.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방법이고, 최적해를 주리라고 기대할 수 있기에 꽤 애용했던 것 같다.
2학년때 제작한 문학 영화는 전형적인 공리적 사고의 결과물로 기억에 남아있는데
우리는 스스로의 기술적 한계를 정의하고 그로부터 제작할 영화의 폭을 좁혀가는 식으로 기획을 완성했다.
자본과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고 연기력도 일천했기에,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만 골라내는 것은 무척 간단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는 우리의 예상대로 1달만에 만든 학생영화로선 무난한 편에 속했다. 러닝타임이 평균보다 짧다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다. 애초에 무리가 없도록 계획을 세웠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이었는가 하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마음 속으로 상상한 것을 딱 들어맞게 만들어내는 능력은 10대에게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게 분명하다. 그래도 선을 긋고 잊어버리기 전에, 시도는 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오늘처럼 내가 기대는 논리가 지독하게 재미없는 해답을 뱉어낼 때면 뭔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식과 무의식이 정말로 원하는 것, 재미를 느끼는 것까지 공리적 의사결정에 포함하기엔
우리의 언어는 너무 투박하고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은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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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심각한 사날 'ㅅ'
앗 댓글이 요기잉네
먼저, 제 배경을 설명해드리자면.
고등학교 3학년이고 내신 시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국비유학생 준비를 하다 가정문제에 충격을 받아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고 3달째 잉여잉여 거리고있는 한 학생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내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해오던 생각이었는데, 이 곳에서 보게되니 굉장히 반갑네요
그래도 부러운 마음이 진심을 가려 우선시되는 제 마음을 보면 저 자신이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드네요.
심하게 방황을 하고 있는지라 너무도 불안합니다.
목표대학도 자꾸만 내려만 가고 심지어는 어려서부터 항상 꿈꿔오던 장래희망마저 버려야하냐는 생각까지 들때면 정말 가슴이 아려옵니다.
난 정말 재능이 없는걸까? 현실적인 문제를 극복해낼 정도의 재능이 없는걸까? 꿈을 포기해야 하는걸까?
1년 전에 쓴 글인데 덕분에 다시 읽어봤습니다.
사실 이 글은 팀짜서 공모전 준비하다가 "우리가 할 수 있는게 뭘까?"에서부터 시작했더니 하기 싫은 주제만 나오더라는 경험을 두고 쓴 겁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 두 경험은 거기에 적용한 방법론이 문제라기보단 과제를 대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산 얼마, 섭외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 어필할 수 있는 전공지식, 딱 정해놓고 거기서부터 짜맞추려다 보니 조원들의 흥미에도 맞지 않고 퍼포먼스도 떨어지게 된 거죠.
그러지 말고 공통된 관심분야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접근했어야 했습니다. 지금 다시 같은 과제가 주어진다면 일단 뭐든지 가능하다고 치고 어떤 주제를 가장 하고싶은지부터 조원들에게 물어볼겁니다.
그래서 설령 떨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싶은 상상을 원없이 했기에 후회는 하지 않을 주제를 고를 겁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T.W.Haensch교수도 처음부터 goal(노벨상)을 노리고 연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호기심을 따라가면 언젠가 노벨상으로 이끌어줄거라고 했죠. 그리고 마음가짐을 그렇게 먹으면 상을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어차피 큰 이슈가 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현실의 어떤 조건보다도 우선되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신도 아주 좋지는 않은 것 같고 국비유학도 올해는 힘들어 보이는데 그것때문에 장래희망이 불가능해졌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겠죠.
당장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면 구태여 시비걸지 말고 잊어버리세요. 해결해버릴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다른 길은 항상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쉬란다고 진짜 쉬지 말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뭐라도 하세요. 가만있으면 지금처럼 비생산적이고 쓸데없는 생각만 계속 들겁니다.